순전히 '키친'이라는 제목 하나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이다.
할머니를, 엄마를, 4년간 사귀던 남자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민음사에서 출간한 이 책 속에는 처녀작인 '키친', 그 후속작인 '만월'과 함께 '달빛그림자'라는 바나나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소설류를, 특히 일본 소설을 (어쩌면...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담담하고 조용한 느낌. 색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이 있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옅은 흰색, 아니 회색, 아니 다시 흰색의 빛으로 왔다갔다하는 그런 느낌. 아! 햇살이 잘 드는 커다란 창에 걸린 너무 촘촘하지 않은 하-얀 커텐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느낌. 격한 감정의 급류 없이 조용하고도 잔잔한 호수를 걷는 느낌의 작품이었다.
책 얘기를 하다가 감자기 뜬금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소설책 같은 사람을 만나리라 생각했다. 영화같은 사람과 소설책같은 사람이 있다면 소설책 같은 사람. 내 눈길이 멈추는 곳에서, 내 감정이 머무는 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 내 감정이 일렁인 곳에서 충분히 음미할 수 있는 소설책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 나 역시 내 감정을 강요하기보다는 그냥 옆에서, 함께, 조용히,상대의 감정을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이 소설의 주된 내용은 가장 가깝고도 가장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남겨진 사람의 상처, 그 상처의 치유에 대한 것이었다. 세 편이 모두 그렇다.
내가 경험한 죽음은 지난 2012년 9월 나의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그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과 함께 깊은 괴리감이었다. 나와 내 가족은 할머니를 두번 다시 살아 보지 못한다는 슬픔 속에 있었지만 세상은 그와 무관하게 계속 흘러가고 있었고, 이런 괴리감은 처음이었다.
걷는 걸음걸음, 살아가야 하는 나날들을 내던지고 싶었다.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고, 그러다보면 내주가 오고, 틀림 없이 그렇다. 그런 일들이 이토록 성가셨던 적이 없다. 이제나저제나 나는 슬픔과 암울함 속에서 살아가겠지, 정말 싫었다. 가슴속은 태풍인데, 담담하게 밤길을 걷는 자신의 영상이 귀찮았다. (p. 53)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살아가는 내게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문득 들려오는 할머니의 찬양 하시던 목소리에, 우리 박성경이, 사랑하는 박성경이, 하며 얼굴 부비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그 말랑하고도 부드러웠던 할머니의 볼의 감촉이 떠오를 때면 내 앞에 있는 일들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당신의 기억은 하나씩 잊어가면서, 나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의 안부를 묻던 할머니. 말도 안되는 바느질로 옷들을 잔뜩 만들어서는 내게 주시겠다던 할머니. 학기를 시작하기 전, 할머니 댁에 인사 드리러 갔다가 할머니에게 미운 소리를 하고 헤어졌던 그 날이 마지막이었기에 더 슬펐던 날들. 그리고 지금은 또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어서 새삼 아려오는 그 날들이 오버랩되며 읽어내려갔다.
잔인했던 지난 4월, 세월호와 함께 바다속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보낸 많은 이들의 마음을 나는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바나나의 소설에서처럼 조금씩, 조금씩 마음으로 빛과 바람이 통하는 날이 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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